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킹만 사건 (문단 편집) === 북베트남의 "남베트남 군함으로 착각" 주장은 사실인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c-461 class.png|width=100%]]}}}|| ||<:> {{{#000,#ddd 1960년대 당시 남베트남 해군의 주력함이었던 PC-461급 구잠함.}}} || 한편 펜타곤 기밀문서에 의하면 이때 '''남베트남은 속칭 34-A 작전이라는 비밀작전의 일환으로 특공대를 보내 북베트남 연안에 대한 습격 행위를 하고 있었고 미 해군이 은근슬쩍 이를 지원하고 있었기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북베트남 측이 매독스 함이 미군이라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군함의 신원을 착각했다"는 북베트남의 변명은 모순점이 있다. '''1960년대까지 남베트남 해군이 운용한 함정들은 450톤의 PC-461급 구잠함 정도였지 한 번도 1,000톤 이상의 군함을 운용한 바가 없었다.''' 나중에 1,500톤급인 에드솔급 호위구축함이나 바드갓급 수상기모함을 공여받아 운용하긴 하지만 이는 1970년대의 일이다. 북베트남군은 시민군이나 민병대가 아니라 10년 전인 1950년대에 이미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승리한 현대적 군대였으며 내부 동조자가 많던 남베트남에 대한 첩보력은 미국의 북베트남에 대한 첩보력 이상이었다. 그런 북베트남 정부가 2,200톤의 구축함인 알렌 M. 섬너급을 남베트남 해군 함정으로 오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과연 북베트남 해군 지휘관이 이런 수준의 기초적인 정보마저 몰랐겠냐는 것. 광복을 맞이한 지 5년밖에 안 된 대한민국 정부도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북한이 보유한 군함 정도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일선에서 함종을 착각하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비스마르크 추격전|1만톤 남짓한 순양함을 3만톤이 넘는 전함]]으로 착각하거나 [[과달카날 해전|그 반대로 3만톤이 넘는 전함을 그냥 순양함으로 착각하는 사례]]는 물론이고 [[산호해 해전|유조선을 항공모함으로 착각해서 두들기는 동안 반격으로 항공모함을 날려먹는 사례]] 등.] 이 사건의 개황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 구축함을 겨우 9.3km거리에서 어뢰로 공격한 사건'이다. 이 거리에서 3척 모두가 표준배수량 2200톤, 만재배수량 3500톤의 구축함을, 커봐야 500톤급을 넘지 않는 남베트남 함정으로 착각했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 게다가 당시 매독스 함은 북베트남 어뢰정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5인치(127mm)]] 주포로 3발의 경고사격까지 하였다. 한편 2008년 [[CNN]]에선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군 총사령관 [[보응우옌잡]] [[장군]]과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서 보응우옌잡 장군은 1차 공격은 인정했지만 2차 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http://web.archive.org/web/20080614065921/http://www.cnn.com/SPECIALS/cold.war/episodes/11/interviews/mcnamara|#]] 사실 특별할 건 없는 게 이미 1995년에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었고[[http://edition.cnn.com/WORLD/9511/vietnam_mcnamara/11-09/|#]] 종전의 공식 입장의 재확인일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